Poem9 [시 추천]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 허수경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저녁에 물새 하나가 마당으로 떨어졌네 툭, 떨어진 물새 찬 물새 훅, 세밀려오는 바람내 많은 바람의 맛을 알고 있는 새의 깃털 사막을 건거보단 달 같은 바람의 맛 올 수 없었던 나날을 숨죽여 보냈던 파꽃의 맛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을 본 양 나의 눈썹은 파르르 떨렸네 늦은 저녁이었어 꽃다발을 보내기에도 누군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기에도 너무 늦은 저녁 참 물새가 뚝 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시간 나는 술 취한 거북처럼 꿈벅거리며 바람내 많이 나는 새를 집어들며 중얼거리네 당신, 나는 너무나 젊은 애인였어 나는 너무나 쓴 어린 열매였어 찬 물새에게 찬 추억에게 찬 발에게 그 앞에 서서 조용히 깊은 저녁의 눈으로 떨어지.. 2021. 6. 16. [시 추천] 눈사람 자살사건 , 최승호 눈사람 자살사건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꼼꼼히 생각해 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 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2021. 1. 19. [사랑시] 농담 , 유은고 농담 앵무샙니다 생선 한 토막으로 나를 미워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사랑해요 말할 수 있지만 알아볼 수는 없겠습니다 오늘은 거위 한 마리와 개암나무의 이름을 짓겠습니다 당신도 다음도 성적 취향입니다. 최대한 인간적 자세와 행위를 가르칩니다 옥수수알을 던지며당신이 당신에게 가르치는 것은 의사소통 능력이 아니라 정자가 난자에게 도달하는 지구력이 되겠습니다 당신의 지구가 아름다워졌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구에서 떳떳하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생선 한 토막이나 정자 3억 개로는 호소력이 희박한 시대에 사는 인간만큼 신뢰할 동물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무서운 무기인데 이론은 아름답군요 아름다운 세계는 없겠습니다 옥수수 알이 물맛이 개암나무의 기적이 있겠습니다 하나의 기적을 이루려면 사랑할.. 2021. 1. 7. [사랑시] 어디서부터 사랑일까 , 이애경 어디서부터 사랑일까 안 보이면 걱정될 때부터 사랑일까보고 있을수록 걱정될 때부터 사랑일까 네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부터 사랑일까 너에게 시선도 못주고 네 옆을 재빨리 지나갈 때부터 사랑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네가 생각날 떄부터 사랑일까 머릿속으로 떨쳐 내려고 애쓰는 떄부터 사랑일까 너를 사람들에게 사랑하고 싶을 때부터 사랑일까 너를 꼭꼭 숨겨놓고 나만 보고 싶을 때부터 사랑일까 네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 사랑일까네 생각에 마음이 아파오는 것이 사랑일까 네가 무엇을 하든 용서될 때부터 사랑일까 조금만 서운하게 해도 네가 지독히 미울 때부터 사랑일까 - 이애경 2021. 1. 7. [시간이라는 배, 너라는 바다]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0. 12. 14. [사랑시] 사랑하는 이유 , 이정하 사랑하는 이유 그대 내게 왜 사랑하는가 묻지 마십시오 내가 그대를 사랑함에 있어 별다른 까닭이 있을 수 없습니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듯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대 내게 왜 사랑하는가 묻지 마십시오 공기가 있으니 호흡을 하듯 내가 그대를 사랑함에 있어 별다른 이유가 있을리 없습니다 그저 그대가 좋으니 사랑할 밖에 그저 그대가 사랑스러우니 사랑할 밖에 - 이정하 2020. 12. 12.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