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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POEM

[시 추천]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 허수경

by 구유미 2021. 6. 16.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저녁에

물새 하나가 마당으로 떨어졌네

 

툭,

떨어진 물새 찬 물새

훅,

세밀려오는 바람내

 

많은 바람의 맛을 알고 있는 새의 깃털

 

사막을 건거보단 달 같은 바람의 맛

올 수 없었던 나날을 숨죽여 보냈던 파꽃의 맛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을 본 양

나의 눈썹은 파르르 떨렸네

 

늦은 저녁이었어

꽃다발을 보내기에도

누군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기에도 너무 늦은 저녁

참 물새가 뚝 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시간

 

나는 술 취한 거북처럼 꿈벅거리며

바람내 많이 나는 새를 집어들며 중얼거리네

 

당신,

나는 너무나 젊은 애인였어

나는 너무나 쓴 어린 열매였어

 

찬 물새에게 찬 추억에게 찬 발에게

그 앞에 서서 조용히

깊은 저녁의 눈으로 떨어지던 꽃을 집어드는 양 나는 중얼거리네

 

당신, 

우린 너무 젊은 연인이었어

우리는 너무 어린 죽음이었어

 

- 허수경